최근 ‘예측 시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습니다. 예측 시장은 미래의 이벤트를 예측하여 베팅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말합니다. 예측 시장에서 다루는 이벤트는 선거 결과와 스포츠, 전쟁까지 사회 전반의 거의 모든 이벤트를 베팅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후 이어진 전쟁은 예측 시장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익명으로 손쉽게 베팅할 수 있다는 편의성 덕분에 거래 규모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토큰 터미널(Token Terminal)’에 따르면, 작년 초 7억 달러(1조 400억 원) 정도였던 예측 시장 거래 규모는 올해 초 35억 달러(5조 2,000억 원)로 5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예측 시장 플랫폼의 부상에 뉴욕 월스트리트 역시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의 허가 아래 운영되는 예측 시장 플랫폼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고 있습니다. 초단타 거래 업체인 ‘DRW 홀딩스’는 최근 예측 시장 플랫폼 모니터링과 거래를 담당할 전담 트레이더 채용에 나섰습니다. 골드만삭스 데이비드 솔로몬(David Solomon) CEO는 “예측 시장은 파생 상품과 구조가 비슷하여 우리 사업과의 접점이 크다”고 말하며, “금융권의 새로운 투자 영역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을 카지노 게임으로” 예측 시장에 대한 비판 확산
그러나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전황과 인명 피해 여부를 두고 금전 베팅을 벌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에 대해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 암살과 사망을 예측한다는 이유로 돈을 걸고 전쟁을 게임처럼 즐긴다는 윤리적 비판입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해 하메네이가 제거될 것이다’라는 베팅부터 ‘핵폭발 발생’ 등 사람의 생명을 대상으로 베팅을 벌이고 있지만, 신규 시장인 만큼 현재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규제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미국 의회는 부랴부랴 예측 시장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상·하원은 ‘상품거래위원회(CFTC)’의 규제 대상 기관이 테러와 암살, 전쟁 및 죽음에 관련된 계약을 진행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미국 애덤 시프(Adam Schiff) 연방 상원의원은 “미 의회는 이러한 죽음의 베팅이 명백히 금지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 예측 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와 군사 충돌 지속 등을 이유로 휴전 관련 베팅을 일시 보류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돈이 걸려 있다는 이유로 언론 보도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시도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의 종군 기자 에마뉘엘 파비안(Emanuel Fabian)은 지난 3월 10일 이란의 탄도 미사일 공격 당시 예루살렘(Jerusalem) 인근 베이트 셰메시(Beit Shemesh)에서 “미사일이 인근 공터에 떨어졌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미사일 직접 타격이 아닌, 요격된 미사일 파편이 낙하했다”고 정정 보도할 것을 요구하는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시점을 두고 예측 시장에서 베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10일 이란이 공습한다’는 항목에 걸린 판돈만 1,400만 달러(208억 원)였습니다. 요격된 미사일은 미사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공습하지 않는다’에 베팅한 사람들이 정정 보도를 요구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에마뉘엘 파비안은 구조 당국의 발표와 미사일 낙하 영상 등을 근거로 기사 수정을 거부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의 신상과 가족 정보를 거론하며 “기사를 고치지 않으면 상상도 못 할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살해 협박까지 일삼았습니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베팅 가능성도 제기
이벤트 발생 여부에 수억 원의 돈이 걸려 있는 만큼, 돈을 벌기 위해 내부 정보를 유용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예측 시장은 사실상 온라인 카지노와 다름 없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베팅 결과에 이해 관계를 가진 이들이 작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6월에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핵 시설 공습 당시 내부 기밀 정보를 활용해 15만 달러(2억 2,3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이스라엘 예비군이 기소됐습니다. 이외에도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것이라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 비정상적인 베팅이 다수 발견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란 공습 바로 전날인 2월 27일, “미국이 내일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는 베팅에 150개가 넘는 계정이 1,000 달러를 베팅했습니다. 이들은 1~50만 달러(1,500만~7억 4,0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예측 시장의 투자자는 이란 공습이 토요일까지 이어질 것이라 종료 시점까지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미국의 공습 시점을 둘러싼 예측 거래에만 총 5억 2,900만 달러(7,871억 원)가 몰린 상황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둔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3일 오전 7시 23분 이란 발전소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5일간 미루겠다고 발표했는데, 발표 15분 전 원유 선물 시장에서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7억 6,000만 달러(1조 1,300억 원) 이상의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4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이 ‘2주 휴전안’을 전격 수용하겠다는 발표를 하기 몇 시간 전, 발표 직전 50개 이상의 신규 계정이 ‘휴전이 이루어진다’에 베팅했습니다. 신규 계정의 대부분은 계정 생성 직후 첫 거래로 휴전에 베팅하기까지 했습니다.
발표 당일 오전 10시에 생성된 한 계정은 7만 2,000달러(1억 원)를 베팅하 20만 달러(3억 원) 이상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발표 12분 전에 만들어진 계정도 3만 1,908달러(4,747만 원)를 베팅하여 48,500달러(7,216만 원)의 이익을 올렸습니다.
3개 계정은 휴전 시점을 정확히 맞혀 60만 달러(약 8억 9,200만 원)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을 중재할 것이라는 움직임이 알려진 영향일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일부 참여자가 사전에 휴전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거나,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벌이기 직전 신규 계정이 대규모 수익을 거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부 정보 유용 의혹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부자 거래 의혹에 백악관도 직원 단속 나서
내부자 거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며 예측 시장을 대상으로 내부자 거래 가능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 의회는 최근 예측 시장까지 포함해 내부자 거래의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민주당 및 공화당의 동의 속에 발의됐습니다. 민주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연방 상원의원은 지난달 인터뷰를 통해 예측 시장이 “전쟁을 카지노 게임으로 만들고, 국가 안보와 관련한 중요 정보 유출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현재 앤드루 김(Andrew Kim) 연방 상원의원과 함께 전쟁이나 군사 행동과 관련된 예측 시장 상품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백악관 역시 직원 단속에 나섰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휴전 발표 직전 국제 원유 선물 시장에서 대규모 거래가 이루어지고 예측 시장에서 휴전 시점을 두고 베팅이 이루어지자, 백악관 운영팀은 직원들에게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폴리마켓’ 같은 예측 시장에서 타이밍을 노린 베팅을 하지 말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미 정부의 윤리 규정상, 연방 직원은 정부 건물 안에서 베팅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공적 정보를 사적 이익에 사용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예측 시장이 익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의 윤리 규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현재까지 내부 정보 유출 사례나 행정부 인사가 내부 정보를 이용해 베팅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미국의 가장 큰 예측 시장 플랫폼인 ‘폴리마켓’과 ‘칼시(Kalshi)’ 모두에 발을 들이고 있는 만큼 내부자 거래 의혹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